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제국 군대 해산 (문단 편집) == 결과 == 8월 1일 [[남대문 전투]] 이후 살아남았거나 해산식에서 뛰쳐나온 대한제국군의 의병 합류로, 장비와 전투능력은 한층 강화되어 [[정미의병]]이 발발한다. 당시 해산된 대한제국의 군인들은 8,000여 명 정도였는데, 이들 중 3,000여 명이 [[13도 창의군]]에 가담하여 1907년 11월 [[서울 진공 작전]]에 참여한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해산된 대한제국군 출신들이 의병에 합류하자, 이를 막기 위해 통감부는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지 않도록 헌병보조원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8월 30일자 매일신보 기사에 따르면 해산된 대한제국군 257명이 순검과 헌병보조원으로 채용된다.[[http://nestofpnix.egloos.com/4174963|#]] 또한, 당시 해산을 면하고 황실 경호부대로 존치가 허용된 시위 2연대 2대대는 봉기에 참여하지 않은 채 1907년 8월 이후 황궁 의장(儀裝)과 수비를 임무로 하는 근위 보병대 1개 대대로 644명이 편성되었다. 1907년 12월에는 92명의 근위 기병대가 편성되었다. 1909년 7월에는 군부가 폐지되면서 근위 보병대와 근위 기병대는 축소되었다가 경술국치 이후 [[조선보병대]]와 조선기병대가 되었고 이후 조선기병대는 1913년에, [[조선보병대]]는 1931년에 해체되었다. 1931년 해체 당시 약 202명의 인원이 남았고 이들은 일본군 헌병보조원과 순사보조원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